1905년 학부대신이 되어 을사조약 체결에 앞장서 의정대신임시서리 및 외부대신서리까지 겸했다. 1907년 의정부참정대신으로 농상공부대신서리·광산사무국총재를 겸했고, 6월 내각총리대신으로 궁내부대신서리를 겸했다. 1907년 7월 헤이그 밀사사건이 일어나자 고종의 책임을 추궁하며 고종의 양위를 주장하여, 궁내부대신을 겸하면서 고종의 퇴위를 성사시켰으며 한일신협약을 체결했다. 8월 매국친일의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욱일동화대수장을 받았다. 1909년 12월 이재명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으나 회생했다. 1910년 8월 총리대신으로 내각회의를 소집하여 합병에 관한 건을 상정하고, 어전회의를 소집하여 합병안을 가결시키는 동시에 스스로 한일양국병합전권위원이 되어 데라우치의 관사로 찾아가 합병조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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